술의 생리학-술을 잘못 먹으면 왜 짐승(개)이 되나?

술의 생리학-술을 잘못 먹으면 왜 짐승(개)이 되나?

이태호의 미생물 이야기(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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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제의 내용은 [이태호의 미생물 이야기]와는 직접 관련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술이란 어차피 미생물이 싸놓은 배설물 아닌가. 이 요상한 물질이 그동안 인류에게 얼마나 많은 정신적·생리적 폐해와 사회적 해악을 끼쳤는지를 감안해 볼 때, 미생물학자로서 도저히 그냥 넘길 수가 없어 그 책임감(?)에 몇 자 적는다.

앞선 주제 '4번의 술 시리즈'에서 은근히 술 마심을 조장 하는듯한 필자의 논조가 몇 독자에게는 다소 노여움과 질타의 대상이 된 듯하다. 이 글은 이에 대한 해명일 수도 있고, 술꾼들에 대한 경고일 수도 있다. 글이 다소 길지만 술이 얼마나 인간에게 백해무익인가를 알아본다.

술을 마약에 비유하곤 한다. 마약? 술하고 무슨 관계인데? 관계가 깊다. 시시한 마약보다 더 치명적이다. 마약이란 "미량으로 강력한 진통작용과 마취작용이 나타나고 습관성이 되며, 중단하면 격렬한 금단증세로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해 져 결국은 육체적, 정신적 폐인이 되게 하는 위험한 향정신성물질이다”라고 정의한다. 미량이라는 단어만 빼면 한마디도 술과 다르지 않다. 술도 습관성이 강해 중독환자의 치료는 마약 못지않게 어렵다고 하지 않는가. 알코올성 지방간, 알코올성 간 경변, 알코올성 치매 등 단어만 들어도 오싹해지는 질병이 알코올에서 비롯된다. 중독자에게 환상과 환청이 오는 것도 알코올에 의한 뇌손상의 결과다.

술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은 긍정·부정 양면이 있다. 기분이 울적할 때 술을 마시면 정신상태가 고양되고 스트레스가 해소된다고 한다. 걱정이 있거나 잠이 안 올 때, 소심하여 할 말을 못 할 때 술의 힘을 빌리기도 한다. 그것이 사랑고백일 수도 있고 시비일 수도 있다. 긍정적이라야 고작 이 정도다.

먼저 부정적 측면 즉, 술이 사회에 미치는 해악이다. 우리는 술에 대해 관대한 정서가 있다. 술김에 했다 하면 용서되고 이해되는 경향이 있다는 거. 심지어 범죄의 형량까지도 참작된다. 얼마나 위험한 발상인가. 

술만 들어가면 멀쩡하던 사람이 짐승으로 변하고 인성이 돌변하여 감당이 안 되는 사람이 흔한데도 말이다. 시비를 걸고 주변을 난장판으로 만들며, 파출소에서조차 난동을 부리는 간 큰 술꾼조차 있다. 대형 교통사고의 원인 중 음주운전이 으뜸이다. 과거 술 퍼먹고 마누라 패고 살림 부수는 못난이도 있었다. 아니 지금도 있나? 한땐 주폭(술 폭력배)이라는 단어도 유행했고, 주폭(酒暴)과의 전쟁을 선포한 정부도 있었다.

술의 역사는 유구하고 음주에 대한 경계(警戒)성 잠언도 있긴 하지만 찬양 쪽이 훨씬 더 많다. 옛적 우리 선조는 술 잘 먹는 것을 멋과 풍류쯤으로 알았다. "잡수시오 잡수시오∼∼"하는 권주가도 있었고 술을 좋아하면 호기롭다고도 생각했다. "그 사람 말술이다. 짊어지고는 못 가도 먹고는 간다. 영웅호걸은 주색잡기를 좋아한다"는 등 이를 자랑처럼 여기는 풍조도 있었다. 두주불사에 진한 농담 잘 하는 사람이 좌중의 인기를 독차지하는 것도 예나 지금이나 같은가?

한편 술 못 먹는 사람은 "(누룩을 빗대) 밀밭에만 가도 취한다. 알코올 인디케이트(지시약)"라고도 했다. 이런 사람은 고금으로 대인관계도 출세 길도 여의치 않았다. 덜떨어지고 고추 값(?)도 못하는 사람으로 취급하는 경향마저 있었다(하면 과장일까). 어려운 자리에서 권하는 술을 사양하면 왕따 신세가 되기 십상이다. 경고 한마디 하자. "얼빠진 상사! 억지로 부하에게 술 먹이지 마라. 당신에게는 기분 좋게 하는 마약일지 모르나 술 못 먹는 사람에게는 독약일 수도 있다"고.

술이 마약과 같이 향정신성 물질로 분류되지 않는 게 참 이상하지 않나. 건강을 해칠 뿐만 아니라 사회비용도 만만찮고, 간혹 가정을 파괴하며 대인관계까지 훼손하는데도 말이다. 술이 이러한 해악에도 불구하고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인간의 역사와 함께했기 때문일 것으로 짐작이 간다. 성경의 창세기에도 노아의 방주에도 술 이야기가 나온다. 또 술이 국가재정의 중요한 세원이기도 해서다. 소비자가격의 60~70%가 세금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국가가 스스로 나서서 쉽게 규제할 대상이 될 것 같지는 않다. 알코올이 만약 최근에 발견됐다면 그 치명적인 부작용 때문에 마약처럼 판매가 금지됐을 것이 분명하다. 술을 금지하는 나라도 있지 않은가.

다음은 술이 신체에 미치는 생리적영향이다. 미리 말하지만 술은 백해무익이고 공포 그 자체다. "하루 한 잔의 적당한 음주는 건강에 좋다"라는 속설이 있지만 천만의 말씀. 이는 앞에서 언급한 향정신적인 측면뿐이다. 물론 혈관을 확장하여 혈액순환을 도우며 심장병의 예방효과는 조금 있다 하지만 이를 기대하고 술을 마시면 득보다 해가 더 많다. 더구나 혈액순환과 심장이 정상인 사람이 더 좋게 할 이유가 뭐가 있으며, 이를 위해 술을 먹는 사람이 어디 있나.

알코올은 진정작용이 있다. 전신마취제처럼 대뇌피질을 마비시켜 억제성 조절작용(자제력)을 상실케 하고 신경세포의 정상적인 기능을 방해한다. 항 이뇨호르몬의 작용을 억제하여 소변의 배출을 촉진, 탈수현상을 초래한다. 혈관을 확장시켜 체온의 손실을 동반하며 동사의 위험성을 높인다. 저혈당을 초래하고 혈액을 산성화하며 지방의 합성을 촉진한다. 여성의 에스트로겐 수치를 높여 유방암의 발생을 촉진하는 등의 생리적 부작용이 거론된다.

에탄올은 대단히 살균력이 강하다. 주사를 맞을 때 소독하는 것이 바로 70% 에탄올(술)이다. 미생물을 죽이는 살균력이라면 사람세포는 온전하겠는가. 실험쥐에 이 농도의 알코올을 강제로 먹였더니 위에서 출혈이 일어나는 현상이 실험적으로 증명됐다. 빈속에 먹는 술이 맛있다고 술꾼들은 말한다. 독한 술일수록 목구멍을 짜릿하게 하니 그 맛으로 먹는다는 사람도 있다. 식도에 상처를 내서 그런데도 말이다. 일종의 새디즘(Sadism)이다. 위장에도 탈을 내 다음날 속 쓰려한다. 알코올에 의해 위가 손상됐는데도 속 푼다고 해장술을 또 한잔 걸친다. 숙취로 머리가 아프다면서 비실거리기도 한다. 이는 뇌와 간이 손상되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알코올이 국제암연구소 지정 1군 발암물질이고 대사과정에서 나오는 아세트알데히드가 2군 발암물질이라는 사실을 술꾼들이 알게 된다면 조금은 자제하려나 모르겠다. 이들 물질은 위험 그 자체다. 혈관 속 묽은 농도의 알코올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은 그렇게 크지 않다고 치자. 문제는 알코올이 대사되면서 나오는 중간물질인 아세트알데하이드(acetaldehyde)라는 것이 매우 독성이 강하다는 거다. 이때 활성산소(ROS)의 생성도 동반된다. 이런 물질들이 온몸에 해를 입혀 두통을 유발하고 간과 혈관에 탈을 낸다. 음주의 모든 부작용이 이들 물질에 의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술에 강한 체질은 선천적으로 알코올의 대사에 관여하는 효소의 양이 많다고 알려져 있다. 이는 유전성이 강해 술꾼의 자식은 술꾼이 되는 이유다. 옛적 우리 선조는 혼인 시 상대 집안의 주벽(酒癖)과 축첩(蓄妾)내력을 따졌다. 남자의 바람기도 내림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서양인들이 위스키를 병 채로 마시는 광경을 영화에서 많이 봤다. 이는 서구인이 동양인보다 이 효소의 활성이 강한 신체적 특성을 가지고 있어서다. 우리의 술에 대한 내성은 서양인에 미치지 못한다.

그럼에도 우리의 술 소비량은 늘 세계최고반열에 오른다. 하루 평균 50g(소주 1병)의 알코올을 매일 섭취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대장암에 걸릴 위험이 21%나 높다. 술이 대사되면서 나오는 아세트알데하이드는 대장암 외에도 간암, 유방암 등을 유발한다. 얼굴이 잘 붉어지는 사람은 아닌 사람보다 암 위험이 6배나 높다. 이런 유전적 특성을 가진 한국인은 16%가량으로, 서양인의 1~5%보다 훨씬 많다는 사실, 놀랍지 않나.

객관적인 데이터도 있다. 음주가 암 등의 질병 발생과 사망률을 높인다는 사실을 국제연구 프로그램인 '국제질병부담연구(GBC)'가 밝혀 유명 의학학술지인 '랜싯'에 발표됐다. 그 내용은 이렇다. 1990~2016년 사이 195개국 2800만 명의 데이터를 분석하여 음주와 질병의 상관관계를 연구한 결과, 술은 아무리 조금 마셔도 득보다는 실이 많다는 것. 

15~95세의 남녀를 대상으로 하루 한 잔의 음주가 사망률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해보니(한 잔의 정의는 레드와인 작은 잔 한 잔, 또는 5% 맥주 0.7캔) 한 잔의 음주라도 간질환과 결핵, 암 등 23개 알코올성 질병에 걸릴 위험을 0.5% 높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두 잔부터는 위험이 대폭 증가해 7%의 추가 환자가 발생했다. 이는 10만 명 당 4명의 환자가 추가 발생한다는 의미다. 이른바 한 잔의 음주가 몸에 좋다는 기존 속설이 틀렸다는 사실이 밝혀진 셈이다.

또 음주가 조기사망률을 높이는 7대 원인으로 꼽힌다. 2016년 기준으로 여성의 2.2%, 남성의 6.8%가 음주로 인해 조기 사망했다. 특히 15~49세 남녀는 각각 12.2%, 3.8%로 음주가 조기 사망의 가장 위험한 요인으로 나타났다. 음주와 관련한 직접적 사망 원인으로는 결핵(1.4%)과 낙상(1.2%), 자해(1.1%)였다. 50세 이상에서는 암발생(18.9~27.1%)이 특히 음주와 관련이 깊었다.

다음은 어디에서 읽은 글이다. 술은 모든 범죄의 아비, 온갖 혐오스러운 것, 악마가 사람을 찾아다니다 바쁠 때 대신 보내는 것이라고. 알코올섭취량이 많아질수록 이성이 더 매력적으로 보이고 이를 판단하는 인지능력에 왜곡현상을 초래한다. 이를테면 술기운이 돌면 성적충동을 담당하는 두뇌부위의 억제기능이 느슨해지고 취하면 취할수록 짝짓기욕구가 작동하며 일시적인 정신착란이 일어나 온갖 추태와 성범죄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술은 특히 수컷들로 하여금 바람피울 가능성을 더 높인다는 사실이다. 술이 거나해지면 외도의 경향의 강해진다는 거. 들쥐를 상대로 실험한 결과, 정상상태에서는 일부일처제로 평생 짝을 바꾸지 않던 수놈이 술만 먹이면 태도가 돌변했다. 술 먹은 수컷들은 하나같이 새 암컷 파트너를 선호하는 현상을 보였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국인의 1인당 연간 술 소비량이다. 맥주 85병(500㎖ 기준), 소주 81병(350㎖ 기준)을 1년에 마셔댔다. 위스키, 막걸리, 전통주, 포도주, 기타는 통계에 넣지도 않은 수치다. 엄청나지 않는가? 알코올중독자의 통계에서도 한국이 우위를 점한다.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우리의 알코올성 장애비율이 지구촌 순위의 상위에 랭크됐다. 더 높은 국가는 리투아니아, 몰도바, 헝가리, 러시아정도다. 이들은 한국인보다 술을 더 마시지만 음주로 인한 장애는 체질적으로 덜 겪는단다. 한국 남성의 13%가 알코올 중독증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술을 못 마시는 필자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양이다. 누가 다 마셔댔을까? 혹시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썰이 너무 길고 격했다. 그동안 술을 못 먹어 구박받은 필자의 화풀이와 앙심이 배여 있는 글 같아서 좀 거시기하다. 술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욕먹을 것 같지만 내용에는 한 티끌의 거짓이 없다는 걸 밝혀둔다.

다음 주부터 몇 주제는 우리몸속(입, 위, 장, 각 구멍)에 공존하면서 우리의 건강에 음과 양으로 영향을 미치는 미생물에 대해서다. 첫 테마는 "충치와 풍치는 벌레의 소행인가, 미생물의 장난인가?"이다. 마지막으로 술을 예찬하고 경계하는 우리 옛 시 두 편을 옮기고 긴 글 끝낸다.

한 잔 먹새 그려, 또 한잔 먹새 그려.

곶 것거 산 노코 무진무진 먹새 그려.

이 몸 주근 후면 지게 우희 거적 더퍼 주리혀 매여 가나,

유소보장의 만인이 우러네나,

어욱새 속새 덥가나무 백양 수페 가기 곳 가면,

누른 해, 흰 달, 굴근 눈, 쇼쇼리 바람 불 제, 뉘 한잔 먹쟈 할고.

하믈며 무덤 우희 잔나비 휘파람 불제, 뉘우친달 엇더리. -송강 정철-

술을 먹으려니와 덕 없으면 문란하고

춤을 추려니와 예 없으면 난잡하니

아마도 덕예를 지키면 만수무강하리라. –고산 윤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