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과 비상식

임찬종

1시간  · 

** 상식과 비상식

법무부 장관이니, 검찰개혁이니, 검사 집단 반발이니 이런 거창한 단어 다 빼놓고 생각해봅시다. 추미애니 윤석열이니 하는 고유명사도 빼고 얘기해봅시다.

어느 회사에서 평사원이 회장의 지시가 잘못됐다는 취지의 글을 회사 내부 인트라넷 게시판에 올린 상황을 가정해봅시다. 그러자 평소 페이스북을 열심히 하는 회장님이 그 사원이 처리했던 일을 비판한 1년 전 신문 기사를 공유하면서 "좋습니다. 이렇게 커밍아웃 해주시면 개혁만이 답입니다."라는 글을 썼다고 해봅시다.

회장님의 이런 행동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요? 회사 내부에서든 외부에서든 치졸하고 비상식적인 행위라고 평가하는 데에는 전혀 이견이 없을 것입니다. '갑질'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죠. 이사회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회사라면 이런 짓을 저지른 경영자는 아마도 자리를 보전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최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저지른 일이 위 사례와 무엇이 다릅니까? 게다가 많은 사람이 비판하는데도 "이 정도인지 몰랐다."라며서 '2차 좌표찍기'로 해석되는 글을 한 번 더 올리기까지 했다면 이를 어떻게 봐야 합니까?

궁금한 점도 있습니다. 게시판에서 아무렇게나 떠드는 키보드워리어도 아니고, 비판을 업으로 하지만 공식적 권한은 없는 언론사 기자나 야당 의원도 아닌, 검사에 대한 인사권과 징계권을 가진 법무부 장관이 공개적인 자리에서 한 검사의 비위 의혹에 대해서 두 차례나 비난했는데도, 아직까지 해당 검사에 대해 어떤 공식적인 조치가 취해졌다는 소식이 들리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어제도 법무부 대변인실에 물어봤는데 그런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국정감사장에서 추 장관이 여러 차례 강조했듯이 인사권과 검찰 사무에 대한 일반적 지휘감독권을 가지고 있는 법무부 장관이 어떤 검사의 비위 의혹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판했다면, 당연히 해당 검사를 직무에서 배제하거나 적어도 감찰 조치를 취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자신의 인사권을 가진 공무원이 잘못을 저질렀다고 두 차례나 말했으면서도, 장관이 인사권이나 징계권을 행사하지 않는 것 자체가 앞뒤가 안 맞는 일이란 뜻입니다. 아니면 사실관계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화가 나니까 아무렇게나 한 번 질러본 건가요? 도대체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하는 겁니까?

한 가지 더 물어보겠습니다. 해당 검사의 비위 의혹에 대한 1년 전 보도 내용의 진위 여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와 마찬가지로 추미애 장관도 무엇이 사실인지 모르고 있는 것 아닌가요? 제대로 된 조사도 해보지 않고 "커밍아웃"이라는 이런 맥락에서 소비되는 것이 지극히 부적절한 용어까지 사용가면서 해당 검사의 비위 의혹에 대해 법무부 장관이 단정적으로 공표하는 행위를 어떻게 봐야 합니까? 비위 의혹이 뚜렷하다는 취지로 말해놓고서 인사나 감찰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 자체도 모순이지만, 사실은 그에 앞서 진상 조사나 감찰을 통해 법무부 자체적으로 사실관계를 확인해본 후에야 소속 부처 공무원에 대해 장관이 "이 정도인지 몰랐다."라는 말을 꺼낼 수 있는 것 아닌가요? 조사도 안 해보고 "커밍아웃" 운운하는 추 장관은 관심법이라도 쓰는 건가요? 아니면 장관이 그렇다고 하면 검사든 기자든 국민들이든 '장관님이 말씀하셨으니 진실이겠지. 어련히 알아서 하셨겠지.'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입니까?

이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지금 추미애 장관이 벌이고 있는 일을 무슨 정상적인 논쟁이라도 되는 듯 공격과 방어, 주장과 반론의 차원에서 다루는 것이 적절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실제로는 상식과 비상식, 정상과 비정상이 드러나고 있는 것인데도 말입니다.

검찰의 과거 잘못을 다시 지적하며 추미애 장관의 행동에 대한 검사들의 비판에 대해 '선택적 분노'라고 말씀하시는 분들 주장 역시 앞뒤가 맞지 않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아주 심플하게 이야기해보죠. 그래서 박근혜 정부 당시 법무부의 잘못에 정면으로 저항했다가 심각한 불이익을 당한, 매우 예외적인 검사인 윤석열을 현 정부가 검찰총장으로 임명한 것 아닌가요? 검찰개혁의 적임자라는 이유로요. 그런데 갑자기 어느 시점부터 윤석열은 검찰개혁에 저항하는 검사의 상징처럼 됐고, 윤석열 총장의 특정 사건에 대한 수사지휘권을 근거 없이 배제한 법무부 장관을 비판하는 주장은 "커밍아웃"이 됐죠. (다시 말하지만 추 장관이 매우 부적절한 용어를 사용한 것입니다.)

도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걸까요? 물론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모르는 사람은 이제 별로 없을 것입니다.

몇 시간 전 썼던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너는 누구 편이냐'고 묻는 사람들이 공론장에 우글거리는 지금의 상황에서, 이런 글은 누군가를 편드는 주장으로 해석되기 십상이라는 것 잘 압니다. 그러나 정상과 비정상, 상식과 비상식이 뚜렷하게 드러나는데도 상식적 목소리를 내는 것을 주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언론사 기자들에 대한 신뢰가 갈수록 떨어지는 것은 정파성에 영혼을 값싸게 팔아넘긴 양아치들 때문이기도 하지만, 상식이 무엇인지 명백해진 경우에도 침묵하고 있는 기자들 때문이기도 합니다.

정의를 실현하는 대단한 기자는 되지 못하더라도, 사실을 왜곡하지 않는 상식적 기자는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손가락질하고 경멸하는 직업이라고 할지라도, 기자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한 지켜야 할 것들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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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ebong Cho

  계파 옹호에 갈 길 잃은 Justice
  

  이 기사는 전부 맞는 얘기입니다. 사실 검찰을 조금 취재해본 사람이라면 모르기 어려울 정도로 공공연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저는 이런 기사를 쓰는 일이 많이 주저되었습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이번에는 기사를 쓰지 않는 쪽을 택했습니다. 윤석열 총장과 A 변호사, 두 사람의 '관계'라는 것이 그 성격상 모든 사람의 눈에 명백할 정도의 객관적 팩트로 입증되기는 어려운만큼, 아무리 설명을 해봤자 어떤 사람들에게는 한 쪽을 편드는 기사로 밖에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명백한 객관적 팩트를 제시해도 턱없는 음모론을 펼치며 사실을 왜곡하고, 그마저도 안 되면 못 본 걸로 치고 본인의 신앙을 고수하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가운데, '상황 설명' 기사를 쓰기는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윤석열 총장과 A 변호사의 관계가 좋지 않다고 해서, 김봉현 씨가 주장하는 검사 접대 등 다른 의혹제기의 신빙성이 곧바로 무너지는 것이 아니기도 하고요.

  
  

  '너는 누구 편이냐'고 묻는 사람들로 가득한 공론장에서 플레이어가 아니라 기자로 뛸 수 있는 여지가 과연 얼마나 남아있는지, 알고 있으면서도 쓰지 못한 이 기사를 보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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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인옥

    그럴줄 알았습니다.

    요즘은 올곧게 살라고 해도...쉽지가 않은가 봅니다. 항상 힘내세요~ 참기자님들, 참검사님들 등등...사람다운 사람들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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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1시간

  임찬종

  어제 오전 11:53  · 

  
  

  
  

  
  

  피의사실 공표를 금지하겠다며 조국 사태 이후 법무부가 밀어붙인 '개혁'은 선택적 피의사실 공표를 제도화했을 뿐입니다. 권력자의 마음대로 사실을 통제하고 심지어 왜곡까지 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놓고 개혁이라 이름붙인, 사기에 가까운 행동이었습니다.

  
  

  하지만 법무부의 이 같은 황당한 조치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두고 어떤 사람들은 개혁에 대한 기자들의 저항이라고 떠들어댔습니다. 그래서 지난 1년 간 있었던 일들이 당신들 보기에는 어떠했습니까? 부끄러운 줄 아십시오. 당신들 이름이 장차 어떻게 기록될지는 당신들 스스로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임찬종

  2019년 10월 31일  · 

  <피의사실 보도와 여전한 '내로남불'>

  조국 전 장관 일가에 대한 수사와 관련한 수사기관의 피의사실 공표와 언론의 피의사실 보도에 대한 비난이 극심할 때, '내로남불'식 비난이라도 이를 계기로 잘못된 관행이 바로 잡히면 좋은 일 아니냐는 사람들이 있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나 양승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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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성규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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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19시간

  임찬종

  10월 30일 오전 10:27  · 

  조

  
  

8시간  · 

국 전 장관님, 당신은 도대체...

좌영길

10월 30일 오전 10: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