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비판보다 대안에 집중하겠다"고 한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의 페이스북 팔로어는 3만7000여명이다. 지난해 하반기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건에 대한 언급으로 시작해 최근엔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위, 부동산 문제, 노동자의 죽음, 장애인 인권, 코로나19 방역까지 전방위로 다루는 글을 올린다. 이 글들은 매번 수십회 공유되고 기사화된다. 정권에 대한 가감없는 비판으로 ‘제1야당’, 진영을 가리지 않는 공격으로 ‘모두까기’라는 별명을 얻었고, 기사화 횟수와 관련해 ‘진중권 저널리즘’이라는 말이 나왔다. 진 전 교수는 지난 7일 보수에 대한 비판과 대안을 제시한 책『보수를 말하다』를 냈다. “보수의 가장 큰 문제가 지피(知彼)와 지기(知己)가 모두 안된다는 점”이라며 “바뀐 시대에 맞춰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을 논리, 도덕성을 갖추라”고 조언하는 책이다. 10일 중앙일보와 만난 그는 “비판의 작업은 공적 영역을 가진 시민으로서 해야할 일이었고, 한 사람이 버틴다는 걸 보여주는 게 중요했다”며 “페이스북은 이달로 접고 1월부터는 새로운 글쓰기를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8월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 10월 『진보는 어떻게 몰락하는가』에 이어 이번 책은 보수에 대한 비판이다.
“이 정권의 몰락은 확정됐다고 본다. 이익집단으로서 승승장구하는 것처럼 보여도 가치집단으로서는 이미 몰락했다. 그렇다면 비판보다 중요한 게 대안인데 지금 보수가 대안이 못되기 때문에 혁신이 필요하다.” “보수는 두 가지, 지피와 지기가 안된다. 옛 보수는 산업자본주의 시대에 만들어졌고 눈부신 산업화의 업적이라는 신화가 있었다. 하지만 카카오톡이 현대자동차의 시가총액을 넘어선 지금도 보수는 자신들이 헤게모니를 잡고 있는 시절이라 착각한다. 빨갱이로 낙인 찍으면 안기부와 보안사가 오는 시절의 기억으로 (진보 진영에) 빨갱이 낙인을 찍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직도 저들을 주사파고 종북이라고 얘기하는데 저 사람들은 주사파도 아니고 그냥 잡것이다. 그걸 모르니까 정밀타격이 안되는 거다.” - 보수의 대안을 만들어주는 선거 전략으로 읽힐 가능성도 있다.
“한 진영이 다른 진영을 물리치는 이야기가 아니다. 누가 정권을 잡느냐도 아니다. 그렇게 하면서 사회가 너무 많이 후퇴했다. 보수가 지금보다 거듭나야 하고, 민주당은 자유민주주의 개념 자체를 얼마나 왜곡했는지 깨닫고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 진보정당은 민주당이 자신의 정책을 베껴가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게 전체 사회의 진보 아닌가.” - 책에서 박정희ㆍ전두환ㆍ노태우 시절의 보수를 원형으로 삼고 있는 점이 인상적이다.
“지금 보수주의자들은 보수의 장점을 엉뚱한 데서 찾아서 맨날 이승만 찬양이나 하고 있다. 박정희 시절을 놓고도 고도성장만 찬양하는 식으로 핵심을 못 본다. 과거의 보수가 오히려 역동적이고 능동적이며 유연했던 것을 봐야 한다. 박정희 때 학교 평준화, 의료보험, 국민연금, 그린벨트 정책이 나왔다. 하다못해 전두환 시절에도 국가주도경제를 시장주도로 바꿔놨다. 노태우는 ‘보통사람’이라며 대통령에 대한 풍자를 허락하고 냉전 이데올로기를 해체시키지 않았나. 그게 마지막이었다. 어떤 정책이든 국민을 먹여살리는 정책에 보수의 브랜드를 찍으면 되는데, 항상 ‘이건 좌파’ ‘이건 우파’라는 시각으로 ‘세금폭탄’ ‘퍼주기’ 이런 어법 밖에는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 모든 진영을 비판하는 진중권 본인의 정체성은 무엇이냐는 의문이 많다.
“먹물은 그냥 내가 아는 걸 얘기하는 거다. 아닌 건 아닌 거다. 어렸을 때 동네 애들이 자꾸 에베레스트 산을 ‘에레베스트’라고 하더라. 그걸 에베레스트가 맞다고 했다 왕따 당했던 일이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는 담임 선생님이 위정척사파와 개화파를 설명하면서 개화파가 너무 급진적이고 안 좋다고 하더라. 나중에 애들한테 어디가 옳은 것 같냐고 손을 들어보라고 했는데 개화파라고 한 사람은 나 하나였다. 다른 애들은 답이 정해져있다는 걸 다 알아들었는데 나만 못 알아듣고 내 판단에 따랐다. 지금 하는 일도 그런 맥락이다.” - 자발적 논객 생활을 전투적으로 계속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모든 시민에게는 두 영역이 있다. 사적으로 나는 교수질하고 작가로서 글과 책을 쓰는 생업이 있다. 여기에선 내가 미학자다. 다른 공적인 영역에선 투표하고 정치에 참여한다. 두 영역에 동시에 소속된 시민으로서 두 역할을 다 하는 게 옳다고 나는 사람들에게 계속 이야기해왔다.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한다고. 그래서 하는 거다.” - 지난해 페이스북을 활성화한 이후 명예훼손 피고발, 인신공격도 당했다. 개의치 않고 강한 표현, 풍자적 어법을 유지하며 계속 글을 올렸는데.
“내 역할이 그거다. 공적 영역의 내가 할 일이라고 봤다. 또 하나는 한 사람이 버틴다는 걸 보여주는 게 중요했다. 그런 일에 꺾이면 희망이 없다. 사실 처음에 글 쓸 땐 분위기가 정말 무서웠다. 하지만 버텼기 때문에 정권에 대한 다수의 비판이 가능해졌다. 버텨서 살아남는 걸 보여줘야 한다. 윤석열 총장도 단순히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게 아니라고 본다. 자존심 강한 사람이라 언제든 옷 벗고 나갈 수 있지만 독립성, 중립성, 절차적 민주주의, 헌법정신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 그의 수사기법, 검찰문화에 대한 논의와는 별개로 끝까지 버티는 게 상징적인 거다.” - 정치권에 영입되는 게 아닌가는 추측도 가능하다.
“뭐하러 하나. 지금 이미 정치를 하고 있다. 나는 자존감이 굉장히 강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부족한 게 자존감이라고 생각하는데, 내가 나를 지키는 게 중요하다. 모든 직업의 끝에 국회의원이 있고, 그 끝에 대통령이 있는 게 아니다. 간혹 사람들이 ‘의원 한번 하셔야죠’하는데 그걸 뭐하러 하나. 나는 내 마음 속에서 의원들보다 훨씬 위에 있는데. 국회의원들 전화ㆍ문자가 자꾸 오는데 받지도 않고 읽어보지도 않는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초선의원들 모임이 있어 내 얘기를 듣고 싶다고 하면 가서 강연한다.” - 페이스북에 “이제 정권 비판하는 분들은 많으니 그 일은 다른 분들께 맡긴다”는 글을 올렸다.
“페이스북은 신속한 대응용이었다. 이 정권이 프레임 장난을 잘 하기 때문에 그 프레임을 걸면 바로 폭로했다. 그리고 신속하게 넛지(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유도)를 주는 것이 내 역할이었다. 이제 그 방법을 다 봤을테니 그렇게 하면 되는 거고, 나 말고도 많은 사람이 하고 있다.” “본진을 털어야 한다. 오마이뉴스에 글을 쓸 생각이다. 지금 30% 넘는 핵심 지지층 중엔 이권이 달린 사람도 있지만 나름대로 선의를 가진 사람들이 착각을 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1월부터 오마이뉴스에 쓸 글은 이들을 겨냥한다. 진짜 진보의 상을 새롭게 구축하고 ‘이런게 진짜 진보야’ ‘21세기엔 이렇게 나가야돼’라고 보여주려고 한다. 오마이뉴스에 올리면 뭐 어쩌겠나, 저 밑에 배치를 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찾아와 읽을 거라고 믿는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