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운사에 찾아온 봄 기운

김민철의 꽃이야기입니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 위주로 꽃이야기를 전해드리겠습니다.

선운사에 찾아온 봄 기운

지난 주말 선운사 주차장에 내리자마자 송악을 보러 갔다. 선운사로 가는 길 매표소 옆엔 개울 건너 절벽 전체를 뒤덮으며 자라는 덩굴나무가 있다. 줄기를 부챗살처럼 펴고 15미터 넘게 올라간 모습이 장관이다. 잎은 반질반질 윤이 나고 짙은 녹색이다. 겨울인데도 잎이 한여름처럼 싱싱하고 기운이 넘쳤다. 그 기운을 느끼려는듯 이 나무 앞에 한참 서서 웅장한 모습을 감상하는 사람들이 많다.

선운사 입구 송악. 국내 송악 중 가장 큰 나무여서 천연기념물(367호)로 보호하고 있다.

 

송악은 한국의 아이비다. 아이비(Ivy)라는 이름은 사람들에게 익숙할 것이다. 도심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데, 화분의 빈 공간을 채우는 용도로 많이 쓰는 식물이다. 서울역 고가도로를 개조해 만든 ‘서울로7017’에 가보면 대형 화분에 나무를 심고 빈 공간에 아이비를 심은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송악은 잘 모르는 사람이 많다. 상록성 덩굴나무인데, 주로 남해안과 제주도 등 남쪽지방에 분포하지만 해안가를 따라 인천까지 올라와 있고 요즘엔 서울에서도 그리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인왕산 기슭 청운공원에 가면 송악이 담장을 뒤덮으며 자라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송악의 꽃은 10~11월에 황록색으로 공처럼 둥글게 모여 피는데, 이듬해 봄에 꽃 모양 그대로 열매가 검은색으로 익는다. 이 열매가 늦으면 6월까지 달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남부지방에서는 소가 잎을 잘 먹는다고 소밥나무 또는 소쌀나무라고도 부른다. 북한 이름은 담장나무다.

 

선운사 가는 길은 송악 말고도 겨울에도 푸름을 유지하는 풀과 나무들이 많아 이색적인 분위기였다. 바닥엔 석산(꽃무릇) 무리들이 푸른 잔디를 깐 것 같이 펼쳐졌고, 상록성인 삼나무, 비자나무, 편백나무도 많아 어디로 눈을 돌려도 푸르렀다.

선운사 입구에 석산(꽃무릇) 무리가 푸른 잔디를 깐 것 같이 펼쳐져 있다.

 

석산은 초가을에 상사화 비슷한 모양에 진한 붉은색 꽃이 피는 식물이다. 일부에서 상사화라고도 부르는데, 상사화가 따로 있으니 석산(또는 꽃무릇)으로 부르는 것이 맞겠다. 석산도 잎과 꽃이 동시에 피지 않는 점은 상사화와 같지만 상사화는 봄에 새잎이 나는 것과 달리, 석산은 가을에 돋아난 새잎으로 겨울을 나는 점이 다르다. 선운사와 함께 전남 영광 불갑사 등이 석산 군락으로 유명하다. 석산은 탱화를 그릴 때 재료로 쓰여 사찰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식물이라 다 사람들이 비늘줄기를 나누어 심은 것이다.

초가을에 피는 석산(꽃무릇).

 

선운사 동백꽃은 아직 피지 않았다. 제주도와 남해안엔 동백꽃이 피었지만 선운사 동백은 봄에 피는 춘백(春栢)이다. 3월말부터 피기 시작해 4월 중순쯤 절정을 이룬다고 한다. 그러나 이른 것은 빨간 꽃망울이 살짝 보이기 시작했다. 일주문 근처에 있는 미당 서정주 시비에 ‘선운사 동구’가 적혀 있다. ‘선운사 골째기로/선운사 동백꽃을/보러 갔더니/동백꽃은 아직 일러/피지 안했고…’ 미당도 이즈음 선운사에 온 것일까.

꽃망울이 맺힌 동백꽃. 선운사.

 

동백꽃이 피지 않았어도 대웅보전 등 산사를 병풍처럼 빙 둘러싸고 있는 동백나무숲을 보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안내문에는 조선 성종 때 산불에서 사찰을 보호하기위해 조성한 숲이라고 써 있었다. 동백꽃이 절정에 이르면 장관일 것 같았다.  

 

동백꽃은 아직 피지 않았지만 개울가 등에 큰개불알풀은 피어 있었다. 큰개불알풀은 빠르면 1월부터 거의 일 년 내내 피는 꽃이다. 하늘색 꽃에 짙은 줄무늬가 있는데, 냇가 등 양지바른 곳이면 어디서나 볼 수 있다. 그냥 개불알풀은 꽃이 작고 연분홍색이다. 이런 이름이 부르기 민망하다고 각각 큰봄까치꽃, 봄까치꽃으로 바꿔 부르는 사람들이 많다.

 

 

1월말 피어난 큰개불알풀꽃.

 

광대나물도 꽃잎이 막 올라오기 시작해 진분홍빛 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광대나물도 따뜻한 곳에선 빠르면 1~2월에 진분홍빛 꽃을 볼 수 있는 식물이다. 지금 피어도 이상하지 않은 꽃이다. 진분홍빛 꽃들을 둘러싼 꽃받침과 잎 모양이 프릴 달린 광대옷과 같다고 광대나물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점심 먹으러 들른 식당 화단에는 별꽃도 하나 피어 있었다. 남녁엔 이미 봄기운이 가득했다.  

 

 

진분홍색 꽃망울이 맺힌 광대나물.

 

ߌ¼ 오늘 김민철의 꽃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