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는 말했다 “나는 아주 소심한 사람이다”

박완서는 말했다 “나는 아주 소심한 사람이다”

[한겨레 아카이브 프로젝트] 시간의 극장

제29화 한겨레 역대 칼럼니스트 1편

올 1월의 한반도는 추위의 땅이다. ‘단군신화에 나오는 환웅은 분양 사기 당했던 것 아니냐’ 농담이 돌 정도다. 1989년 9월 정운영 칼럼에는 “단군 할아버지께서 처음 터를 잡으실 때 생각이 고루 미치지 못해 그렇게 되었는지”라는 너스레가 실렸다. 추위는 아니고 부동산 문제에 대한 글이었다. “산림지와 농경지를 빼면” 사람 사는 택지가 얼마 남지 않는 땅인데, 그 좁은 땅마저 소수의 사람이 독차지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코피가 터지고 머리가 깨지고 제 몸뚱이에 불을 그어대고 싸우며 얻어낸 급여의 인상액”보다 “사우나탕에서 땀 빼고 필드에서 골프채 휘두르면서도 토지 소유로 발생시킨 자본수익”이 더 큰데, 장차 이 사회가 어떻게 될까 정운영은 걱정했다. 32년 전의 글이다. 미래를 내다본 것 같은 독특한 시선의 칼럼들을 한겨레 아카이브에서 읽어보았다. 해설 김태권

양극화 말한 1989년 5월 칼럼
“어디 산다고 말해야 할 때
이미 쭈뼛쭈뼛해지는 소심증”

“서양보다도 낮은 출산율”
“어차피 외국인력 필요로 할 것”
박노자의 미래 한국 내다본 글

정운영의 독특한 시선은 그 독특한 인생 역정에서 나왔을 것 같다. 젊은 시절 가톨릭 사회운동에 관여했고 가톨릭 사제들의 도움으로 해외 유학을 갈 수 있었다. 벨기에 루뱅대학에서는 한국 사회에서 금지된 학문이었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을 공부했다. 귀국해 십년 동안 <한겨레>에 칼럼을 썼다. 한동안 <문화방송> ‘100분 토론’의 진행을 맡았고 말년에는 <중앙일보>에 글을 썼다. 대학에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을 가르쳤다. 한겨레신문사를 퇴사하기 얼마 전 손홍주 기자가 찍은 사진이다.

정운영이 한겨레신문사를 떠난 다음에도 그의 칼럼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요즘 사람들이 개인 소득과 주택 같은 문제에 관심이 많은데 한겨레의 경제 기사는 사회정치적입니다. 정운영 선생 계실 때는 경제 비전을 제시했는데 지금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한겨레 독자 박종윤이 2005년 11월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를 추모하는 작은 글들이 인터넷의 좁은 거리를 메우고 있다.” 같은 해 박미향 기자의 글이다. 2020년 11월의 ‘세상읽기’ 칼럼에서 최한수는 “내가 가장 좋아했던 <한겨레> 칼럼의 필자는 돌아가신 정운영”이라고 썼다.

“나는 아주 소심한 사람이다.” 1989년 5월, 박완서 칼럼의 첫머리다. 역시 부동산과 양극화 문제가 걱정이었다. “어디 산다고 말해야 할 때 이미 쭈뼛쭈뼛해지는 것도 나의 못 말릴 소심증이다.” 어째서? “지난 일년 사이에 곱절이나 값이 뛴 아파트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가만히 앉아서 불로소득한 액수까지 계산하면 내가 속한 사회가 미쳐도 단단히 미쳐 가고 있다는 위기의식에 사로잡히게 된다.”

박완서의 문학세계는 독특하다. 역사란 무엇인가, 문학이란 무엇인가, 남들이 거창한 이야기를 하는 동안 박완서는 조곤조곤 자기 이야기를 소설과 수필로 풀었다. 그렇다고 사회 문제에 대해 발언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한겨레>가 창간하고 얼마 뒤부터는 ‘한겨레 논단’에 글을 실었다. 오래 연재하지 않았지만, 빈부격차·이념갈등·젠더문제·분단 등 한국 사회의 다양한 급소를 두루 건드렸다. 특유의 조곤조곤한 글맛을 잃지 않으며 말이다. <씨네21>을 위해 오계옥 기자가 찍은 이 사진에 그의 ‘외유내강’한 표정이 잘 드러나 있다.

이 칼럼에서 박완서는 사석에서 있던 일을 떠올리며 “딸 가진 부모”와 “아들만 둔 부모”가 성범죄 문제에 대해 어떻게 다르게 반응하는지를 작가의 시선으로 날카롭게 잡아내고, 사회가 어디로 가는 것인지 걱정한다. “아무리 잘 살고 근심없는 사람이라도 요즘 사람이라면 먹고 마시고 지껄이는 기본적인 일상생활중 문득 이게 아닌데 싶은 막연한 불안에 사로잡힌 적이 있을 것이다.” 1989년 6월의 글이지만 날짜만 바꾸면 요즘 이야기라고 해도 될 것 같다. 그렇다고 당대의 현안을 언급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참교육을 실천하겠다는 선생님들을 응원하며 글을 마치니 말이다.

박완서는 덧붙였다, “도대체 일생을 죽자꾸나 일해도 월세방을 면할 가망이 없는 사람들”의 분노를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고. “요새 너무 많이 가진 사람들의 작태를 봐도 미친 것 같은데 너무 없는 사람이라고 미치지 말란 법이 없다. 없는 사람이 중산층에 대해서까지 적의를 갖는 건 요새 갑자기 중산층의 생활이 붕 떠올라 그들이 차근차근 기어오를 수 있는 계단도 온데간데없이 없어진 느낌 때문이지, 그들의 꿈도 결국은 중산층이 되는 것일 것이다.”

<한겨레>의 옛 칼럼을 다시 읽으니 신기하다. 지금의 한국 사회를 내다본 글 같다. “서양보다도 낮은 출산율” 때문에 “우리 (사회)는 어차피 외국 인력을 필요로 할 것”이라고 박노자는 2005년 8월에 지적했다. 2007년 2월에는 이렇게도 썼다. “한국의 인구는 2050년에 이르러 약 12%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구미에서 해 온 것처럼 국내 노동시장을 제한적으로나마 개방해 외국인들이 합법적으로 일하다가 차후에 좀 더 쉽게 한국 시민이 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까?” 이 글에서 박노자는 고려 역사를 언급한다. “12세기 후반의 고려는 중국인들은 물론 거란, 여진 사람들이 모여 살았던 나라였고 13세기에 이르러서는 몽골인을 포함해 귀화인의 총수가 7만명에 이르렀다. 귀화인들의 독특한 풍습까지도 배려해주는 ‘다문화 공인정책’을 편 것은 고려시대 귀화 붐의 현실적 배경이었다.”

이때만 해도 박노자를 지나친 이상주의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비약적이고 감정적이며 부정확한 사실에 기인하고 있다”는 반박 기고가 2005년에 실리기도 했다. 2006년에는 “이제는 박노자 글의 결론이 얼추 짐작된다”는 말도 나온다 했다. 박노자 칼럼에 대한 한국 사회 일각의 거부감을 보여준다. 하지만 지금은? 박노자가 20년 전부터 해온 이야기들과 비슷한 주장을 이제 우리는 자주 접한다. 불편해하는 사람은 여전히 보이지만 말이다.

박노자는 2005년 9월의 칼럼에서 스스로의 지적 여정을 이렇게 표현한 바 있다. “노동자 차별이 심했던 ‘간판뿐인 사회주의’ 사회(소련)에서 자랐다가 ‘공돌이’와 ‘먹물’이 반상 차별과 같은 차별을 받는 한국에서 살았”고, “손 솜씨가 뛰어난 노동자”가 존중받는 노르웨이에 가서 문화충격을 겪었다고 말이다. 그가 이십년이나 앞서 들려주던 ‘다른 세상’ 이야기는 이제 한국 사회의 문제가 된 것 같다. <한겨레>를 통해 한국 사회에 알려지던 무렵 앳된 그의 모습을, 곽윤섭 기자가 찍었다. 지면에는 공개되지 않았던 사진이다.

박노자 칼럼에 대한 한국 사회의 반응은 뜨거웠다. 2000년 1월에 독자 김선의는 박노자의 글을 읽고 “이 땅의 한 사람으로서 서글픔과 부끄러움을 감출 길이 없다”고 썼다. 2001년 4월에 독자 김성호는 “우리 내부의 모순과 티를 지적해주고 충고해주어” 고맙다고 썼다. 반면 박노자 칼럼이 불편하다는 반박 기고문도 <한겨레>에 종종 실렸다. 특히 ‘대체복무’ 문제에 대한 박노자의 주장은 2002년 7월과 9월에 열띤 지상토론으로 이어졌다. 양심적 병역거부로 감옥에 간 활동가 오태양을 면회하고자 2005년 1월에 구치소로 찾아간 사진이다. 조현 기자가 찍었다.

한편 이주노동자 문제에 대해 1991년 3월에 정운영은 이런 칼럼을 썼다. “결론부터 미리 꺼내자면 노동력의 수입은 안 된다. 백번 양보해도 때가 이르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인 정운영이 어째서 이런 글을 썼을까? 박노자의 글과 얼핏 달라 보이지만, 꼼꼼히 읽으면 본뜻이 드러난다.

“나는 ‘우리가 수입하려는 대상은 노동하는 소나 노동하는 말이 아니고 노동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기억해 주기를 당부한다. 결국 이 좁은 국토의 어느 한모퉁이를 그들을 위해 할애하거나, 그들의 존재를 전혀 어떤 이질감이 없이 우리 사회의 한 부분으로 포용할 아량이 없다면” 해외 노동력의 수입은 “안이한 발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일본인들이 반세기 전에 지어놓은 관사가 여전히 탄광촌의 숙소로 쓰이는 판국에, 외국 노동자를 위한 주택 건설은 엄두조차 낼 수 없는 실정”이라는 정운영의 문장을 읽으며, 얼마 전 비닐하우스에서 숨진 이주노동자의 사연이 떠올라 나는 마음이 내려앉았다. 30년 전에 예견된 비극이었다.

독특한 시선이라면 남재희 칼럼을 빼놓을 수 없다. 2015년에 남재희와 대담을 나누기 앞서, 신진욱은 그를 “보수정권(박정희~김영삼 정권)과 보수정당에 몸담았던 진보 성향의 80대 언론인”이라고 불렀다. 옛날에 장관도 지냈지만 칼럼을 쓰면서는 ‘언론인’이라는 호칭을 고집하는 그다.

남재희가 노동부 장관에 재직하던 1994년 2월의 토막 기사다. “25일 국회 노동위에서 (‘근로자의 날’이라는 이름을) ‘노동절’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던 홍사덕 의원(민주)이 남재희 노동부장관을 ‘근로부장관’이라고 부르자 남 장관이 웃으며 자신은 노동부장관이 맞다고 응수하고 있다. (유창하 기자)” 이때 그를 공격하던 의원은 말년에 ‘친박’에 붙어 정치생명을 연명했고, 정치판을 떠난 남재희는 <한겨레>와 <프레시안>에 칼럼을 썼다. 진영논리의 부질없음을 새삼 생각한다.

남재희의 경력은 독특하다. 4·19 무렵 잠시 ‘혁신계’ 사람들과 가까이 지냈다고 한다. <조선일보> <서울신문>에서 기자로 일하다 정치에 뛰어들어서는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정부 때 여당 국회의원을 하고 김영삼 정부에서 장관을 지냈다. 노동부 장관 때 법정에 나가 노조 쪽에 유리한 증언을 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사람을 폭넓게 만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2014년 11월에는 “진보세력 관찰 60년의 소견”이라는 특별기고문을 <한겨레>에 실었다. 수만권의 장서에 둘러싸인 채 영화 <스타워즈>의 요다를 닮은 표정으로 서 있는 그를 신소영 기자가 사진에 담았다.

모두가 미래를 말하던 2017년 5월의 칼럼에서 남재희는 1960년의 기억을 버르집는다. “4·19 후 과도정부의 수반이 된 허정씨는 ‘혁명적 과업을 비혁명적 방법으로 수습하겠다’ 운운했다. 그것이 장면 내각의 시정철학으로 이어진 게 탈이다. 혁명적 개혁이 필요했던 시기다. 혁명적 사태를 적어도 반쯤 혁명적인 방법으로 대응했어야 했던 것이 아닌가.” 그러면서 촛불항쟁의 결과 탄생한 지금 정권은 “준혁명적 상황까지는 아니라도 준준혁명적 상황에 처했다”고 슬며시 덧붙인다. 행간을 읽는 것은 독자 각자의 몫일 터다.

남북관계가 최악으로 치닫던 2017년 11월에는 “내 생각으로는 북-미 간의 직접교섭이 불가피하다고본다”는 칼럼을 썼다. 그때는 생뚱맞아 보였지만 평창올림픽을 지나며 정말 이대로 됐다. 2018년에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이 이루어졌으니 말이다. 칼럼은 이렇게 이어진다. “전에 한반도의 ‘핀란드화’가 운위된 적이 있다. 당장 통일하겠다는 것이 아니라면 맞지 않는 이야기 같다. 남북 간에 평화가 이룩되고 아마 반세기쯤 지나면 남북 간의 체제는 엇비슷해져 국가연합 또는 연방제의 길도 트일 것으로 본다. 그렇게 될 때 한반도의 통일된 국가는 동북아에서 당당한 독립된 중위권 국가로 독자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정말 이렇게 될까? 30년 후의 누군가가 <한겨레>의 ‘옛 칼럼’을 꺼내 읽고 확인해주기를 기대한다.

이이화의 경력은 독특하다. 2015년 11월 ‘이진순의 열림’에 이이화 인터뷰가 실렸다. 어릴 때 한학을 배웠다. 신식 학문을 배우고 싶어 가출까지 했지만 학업을 계속할 형편이 아니었다. 공식 학력은 고등학교 졸업. 젊은 시절에 술집 웨이터며 아이스케키 장사며 쉽지 않은 일로 먹고살아야 했다. 그러나 탄탄한 한문 실력과 역사를 보는 넓은 안목 덕분에 100권이 넘는 역사책을 썼고, 역사학계에 독특한 발자취를 남겼다. 1993년에는 ‘발굴 동학농민전쟁 인물열전’을, 2010년에는 회고록 ‘길을 찾아서-민중사 헤쳐온 야인’을 <한겨레>에 연재했다. 사진은 이용호 기자.

한국의 지식인 사회에서 장정일의 위치는 독특하다. 종종 폐쇄적인 학벌사회라고 비판받는 한국 사회에서, 중학교를 중퇴한 그는 개성있는 작품으로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극작가로도 시인으로도 소설가로도 자신만의 독특한 문학세계를 구축했다. 책을 많이 읽는 독서가로도 유명하다. <한겨레>에는 ‘장정일의 독서일기’를 연재하였다. 지면에 실리지 않았던 장정일의 사진이다. 사진은 신소영 기자.

좋은 의미로건 나쁜 의미로건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한국 사회에서, 강준만은 언제나 한결같다는 점 때문에 독특하다.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며 지식인들이 이렇게 저렇게 이합집산하는 동안 강준만은 자기 페이스를 유지했다. <한겨레>에는 오래전부터 칼럼을 연재해왔다. 2005년에 송건호 언론상을 받은 바 있다(송건호는 한겨레신문의 초대 대표이사였다). 사진은 고경태 기자.

나는 남성 위주의 한국 사회에서 남성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정희진의 글을 읽는 여성의 체험에 대해 오롯이 알 수가 없다. 여성 독자의 설명을 듣고 ‘아, 한국 사회에서 정희진의 등장은 일대 사건과 같았구나’라고 미루어 짐작할 따름이다. “2003년 등장한 여성학자 정희진은 쓰는 칼럼마다 우리 안의 차별성을 깨뜨리는 ‘망치’가 되었다.” 2008년 5월에 실린 평가다. ‘야! 한국사회’에 글을 썼고, ‘정희진의 어떤 메모’와 ‘정희진의 융합’을 연재해왔다. 박승화 기자가 찍고 2005년 <한겨레21>에 실린 사진이다.

“김선주는 사소한 일상으로부터 사회와 삶의 본질을 길어내어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가장 좋아하는 칼럼으로 김선주의 글을 꼽았다.” <한겨레> 창간 30돌을 돌아보는 2018년 6월의 기사다. 나도 가장 좋아하던 칼럼이다. 김선주 칼럼과 서경식 칼럼을 다시 읽는 일은 다음으로 미루고 이번 글에서는 아무래도 인사만 나누어야 할 것 같다. 문가에서 빼꼼 고개를 내민 모습을 손홍주 기자가 찍었다.

▶ 해설자인 김태권 작가는 만화가입니다. 글도 쓰고 일러스트도 그립니다. 개그도 연구합니다. 요즘은 주로 관악산 자락에서 두 아이를 떠메고 다니며 시간을 보냅니다.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와 <히틀러의 성공시대> 등의 만화책을 그렸고, <불편한 미술관>과 <에라스뮈스와 친구들> <먹히는 자에 대한 예의> 등을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