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 한 해 많은 사람들이 이 사람에게 빚을 졌다. 108석 의석을 가진 제1야당은 말할 것도 없고 이 사람의 말을 받아 적느라 바빴던 언론 역시 예외는 아니다. 한때 유시민, 이외수, 조국, 공지영의 말을 언론이 전하는데 분주했지만 지난해 진중권 정도는 아니었다. 이 사람이 SNS를 통해 몇 줄의 글을 쓰면 언론들은 퍼 나르고 실어 나르기 바빴다.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었다. 오죽했으면 한 중견 언론인이 이런 한탄을 했을까.
"…진중권은 기자들의 게으름과 타락을 부추겼다. '조국 사태'를 기점으로 진보 진영을 디스하기 시작하면서 적어도 그는 언론사 인용 건수 면에서 독보적인 메신저로 자리매김했다. 군소 메신저가 저마다 '진중권 밈'을 시도하지만 족탈불급이다. 매일매일 SNS 상에 올리는 그의 코멘트가 어김없이 기사화되는 전대미문, 전인미답의 현상과 경지가 연출되고 있다. 새해에는 언론의 건강성 회복을 위해 '진중권 중독'을 디톡싱해야 한다."
<고승일 연합뉴스 논설실장 , 관훈저널 2020년 겨울호 중>
극렬 문재인 지지자들이 두려워 언론이 감히 말을 못하고 야당이 최약체인 상황에서 자신이 그 빈 틈을 채운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자신의 말을 실어 나르는 것으로 클릭 수를 확보한 언론의 상업주의도 한 몫 했다는 말도 빠트리지 않았다. 언론이 할 일을 제대로 했다면 자기가 그런 일을 할 필요가 있었겠느냐며 언론이 자기 탓을 하기 전에 반성부터 먼저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그의 말을 주로 인용 보도한 보수 언론에 이용당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그의 입장은 분명했다.
"그들이 도와준다는 데 내가 마다할 이유가 없어요. 일종의 협업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의 정체성은 내가 정합니다. 내가 부당하게 이용당한다고 생각하면 내가 글을 안 쓰면 그만입니다. 한겨레 신문 같은 진보 언론은 제 말을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진중권 저널리즘이라고 부르는 사회 현상이 있다면 오히려 이 현상을 전혀 언급 안하는게 이상한 거 아닌가요."
권력이 무서워 언론이 할 말을 하지 못한다는 그의 말은 언론에게는 모욕적인 말이다. 언론이 할 말을 못했다는 말은 절반 정도 맞는 말이다. 매일처럼 비판을 넘어 저주와 조롱을 쏟아내는 언론이 어디 한 두 군데인가. 용기의 문제가 아니라 능력의 문제다. 진중권처럼 말을 못하는 게 아니라 진중권처럼 날카롭고 정확하게 말하지 못하고 쓰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언론은 용기 없음에 못지 않게 능력 없음을 반성해야 한다.
한국일보, 중앙일보의 지면에 이 사람의 글이 일주일에 한 번씩 대문짝 만하게 실렸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 사람의 글을 밑줄 쳐 가며 읽었다. 보수층은 진중권의 글에서 여권 공격의 근거와 논리를 세우고 미래에 대한 희망의 근거를 찾으려 했고 진보층은 자신들의 약한 곳을 아프게 짚는 그의 글을 읽으며 신음을 내뱉어야 했다. 그의 글에서 반성의 계기와 성찰의 방법을 찾는 이도 있었는데 어쨌든 그의 글은 나올 때마다 화제였다.
2. 그와 인터뷰 일정을 잡는 과정은 인내가 필요했다. 두세 번 문자를 보내야 겨우 답이 왔고 그나마도 늦었고 내용은 짧았다. 문자 메시지를 통해 더디게 만날 장소와 일정을 잡는 동안 거의 매일 그의 인터뷰 기사가 여러 매체에 실렸다. 마치 대기표를 받고 줄을 서서 그와의 인터뷰를 기다리는 심정이었다. 매체는 달라도 그가 하는 말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같은 말을 반복하느라 그가 애쓴다고 생각했다.
이번 인터뷰는 카메라 기자가 동행하기로 했고 그 역시 사전에 이를 양해했다. 약속 시간 30분 전쯤 그의 집 앞에 도착했고 편의점에 다녀오는 그를 만났다. 취재팀을 본 그는 조금 당황한 듯했다. 이렇게 거창한(?) 취재팀이 올 줄 몰랐다는 것이다. 자기 집에는 이만한 사람들과 장비가 들어갈 공간이 없다며 영상 취재를 거절했다. 카메라 기자가 철수하고 그의 집안에 들어갔다. 17평이라는데 실제보다 작아 보였다. 식탁을 겸한 작은 탁자 옆에 의자를 놓으니 한 사람 지나다닐 공간도 빠듯했다. 주방은 밥 해먹은 지 오래되어 보였다. 그는 주로 주변 편의점에서 김밥과 콜라로 식사를 해결한다고 했다.
